(서울=미래일보) 김정현 기자 = 화사한 꽃망울이 잇따라 터지고 만물이 연둣빛으로 소생하는 봄. 어느 덧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던 겨울도 계절의 섭리에 따라 뒤로 물러나고 봄이 우리를 반긴다. 봄은 참 걷기 좋은 계절이다. 물론 걷기에 계절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걷는 길에 대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으면 어떨까. 내가 걷고 있는 길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몸과 함께 마음도 살쪄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금융 잔혹사’의 저자인 윤광원 기자가 생뚱맞게 도보여행 안내서를 펴냈다. 8년 넘게 연재한 ‘윤광원의 이야기가 있는 걷기’라는 칼럼을 모아 ‘배싸메무초 걷기 100선-이야기가 있는 수도권 도보여행 가이드’(글, 사진 : 윤광원 /흔들의자)를 통해 우리가 걷는 길에 이야기와 사진을 입혔다. 이 책은 수도권 트래킹 코스 100군데 안내와 인문학적 내용을 겸비했다. 이 책은 걷기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책장에 꼭 꽂혀 있어야 할 필수 가드이다.
윤광원 기자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 ▲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등의 전제를 두었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가 있으면 길은 단순한 걷기용 코스를 넘어선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그 길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당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역사가, 문학이, 옛 인물들이 그리고 자연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인문학이 있는 이 책은 저자가 8년 넘게 발로, 마음으로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그래픽 행선지 표시로 초보자도 쉽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한 줄 한 줄, 한 코스, 또 한 코스를 읽다보면 저자와 함께 길을 걷고, 가쁜 숨을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첫 장을 넘겨 본다. <봄> 001 자문 밖 길-북악산 자락에서 엿본 예술가들의 삶.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너무도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를 치열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한 저항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단적으로 암시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부암동 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것이 바로 윤동주 시인이다. 부암동 고갯마루 왼쪽 도로변에 ‘윤동주문학관’이 있기 때문. 윤동주 문학관은 흰 페인트로 칠한, 낡고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이다. ‘시인이 아직도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쓰리다.
이 책엔 이런 이야기가 100군데 장소에서 100가지가 넘게 나온다. 감동하고 울컥하고 번뇌하고 공감하다보면 어느새 그 길이 끝나는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있다.
윤광원 기자는 누구인가. 왜 경제전문기자가 트레킹 가이드를 집필했을까.
그는 25년가량 경제 전문기자로 일해 왔다. 특히 금융과 정부정책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많은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걷기와 등산을 열심히 했다.
특히 8년 넘게 트래킹모임 ‘길사랑’을 이끌면서 사람들과 산과 들을 무수히 걸었다. 매주 어딘가를 갔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나간 적도 많다. 짬이 나면 주중에도 다니곤 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저서로는 경제논술 전문서인 '깐깐 경제 맛깔논술'과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역사를 야사를 중심으로 정리한 '대한민국 머니임팩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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